[창간70주년 특집] 응급의학의 현황과 발전 방향 ③(후생신보,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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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 외상, 중독, 급성 질환 등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분야 응급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응급실은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곳인데 야간이건 주말이건 환자는 계속해서 오고, 병상은 부족하고, 이에 환자 보호자들은 화가 난다. 환자의 쏠림 현상, 인력 부족, 야간·주말 근무의 과중함은 응급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다. 열악한 근무환경, 부당한 대우, 만성적인 인력 부족, 지원자 급감,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이탈해 남은 전문의들도 사직하는 등 응급의료가 위기를 맡고 있다. 특히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응급실 의사들.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면 진료를 거부한 나쁜 의사로 취급당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지방은 물론, 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실 전문의 조차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직하는 등 ‘탈 응급실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 응급의료의 위기를 점점 그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이처럼 붕괴 직전이 응급의료를 구하기 위해 처우개선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붕괴직전의 응급의료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응급실 과밀화 문제 △취약지와 최종치료 인프라 개선 △응급의료진의 법적 위험성 감소라는 3가지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응급실 의사들이 왜 어렵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롭게 탄생한 이재명 정부도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의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응급의학계에서는 응급진료전문의 진찰료 수가 인상과 야간·공휴 가산 동일 적용, 인상분의 50% 이상 진료 전문의 직접 지원, 응급의료기관 평가 지원금 응급의료 장비 구매 허용과 같은 응급의료인력과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실질적 지원, 진료 협력 네트워크 구성, 응급의료 인프라 확대와 같은 지역 완결형 응급의료체계 강화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본지는 창간 70주년을 맞이해 대한응급의학의사회와 공동으로 ‘응급의학의 현황과 발전 방향’을 주제로 응급의료 개선, 의료전달체계, 이송체계, 법적 위험성, 과밀화 문제, 응급의료의 미래를 조망해 고사 직전에 있는 우리나라 응급의료를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1.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멀고도 험한 길 -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2.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 응급의료 측면에서 - 김재혁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정책이사 3. 응급환자 이송체계, 전원체계의 개선방향 - 박경석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학술이사 4. 응급의료 법적 위험성 - 김찬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변인 5. 응급실 과밀, ‘전국 일률 처방’ 넘어선 지역별 맞춤 해법 절실 - 최일국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기획이사 6. 응급의료의 미래: 어디까지 응급으로 볼 것인가? - 전 호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총무 |
3. 응급환자 이송체계, 전원체계의 개선방향 - 박경석 이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자랑해 왔다. 감기 기운이 있어도 30분 내에 이비인후과나 내과 전문의 진료가 가능했고, 두드러기나 장염으로 야간에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일부 복합 질환자나 특수 진료가 필요한 환자, 의료취약지의 사례에서는 진료가 지연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응급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일부 극단적 사례를 언론이 과장해 ‘응급실 뺑뺑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이를 근거로 의사 부족을 주장하자 현장의 의료진은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십상시들이 눈을 가린 것인지, 하늘의 구멍이 계시를 한 것인지 여전히 알 길은 없으나, 대통령까지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의대 증원 2000명의 당위성을 강조했을 때, 의사들은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당시에도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 최고 수준이었으며, 의사 수 부족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발표 이후,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 최고 수준이던 의료 시스템은 붕괴 직전으로 내몰렸다.
경증 환자의 접근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중증 응급환자와 특수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5선을 지낸 정치인이 안면부 열상으로 응급실 진료를 받지 못해 20여 곳에 전화를 돌리고 결국 인맥으로 해결했다는 뉴스는, 지금 응급실 현장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의 축소판일 뿐이다.
충청도의 산모가 양수가 터졌다고, 강원도의 환자 기관지에 이물이 있다고, 서울의 필자 병원에까지 매일같이 연락이 온다.
그런데도 야당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사망 사례를 지적하자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라며 이를 부정했다. 현실을 외면한 정부는 비상진료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응급실 뺑뺑이’란 응급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며, 최근에는 병원 방문 대신 여러 병원에 전화를 돌리는 ‘전화 뺑뺑이’ 현상으로 양상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부분 사전 확인 없이 응급실에 환자를 이송했고, 필요시 타 병원으로 전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유행 당시 병원별 지침 차이와 전담병상 운영으로 응급의료가 제한되면서, 구급대와 응급실 간 사전 연락 관행이 정착되었다.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응급실 과밀화로 추가 환자 수용이 어려운 경우이다. 물리적 병상 부족뿐 아니라 의료진 수에 비해 과도한 환자 유입으로 인해 적절한 진료가 어려운 경우이다.
둘째는 중증 환자를 처치 중인 상황이다. 심정지, 쇼크 등 최중증 환자의 처치를 위해 응급실 자원이 총동원되는 경우, 추가 수용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위험하다.
셋째는 최종치료 역량이 제한되는 경우이다. 중증외상이나 산부인과, 안과처럼 특정 전문 진료가 필요한 경우, 해당 병원에서 적절한 협진이 불가능하다면 응급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복부에 칼로 자상을 입은 환자의 경우 외과적 수술 또는 영상의학적 혈관중재술을 통한 지혈술 등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러한 협진체계가 가동되기 어려운 병원에 환자가 이송된다고 응급실 의사가 환자를 살려낼 수는 없다.
응급실에서 일단 급한 응급처치만 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내부 장기의 출혈은 외부 압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외에도 과거 코로나 유행 시와 같은 응급실 내 격리병실 부재, 전산 또는 장비 점검 등 특수한 경우들도 있다.
응급실 과밀화 문제는 응급의료기관의 종별 특성에 따른 개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며, 권역응급센터와 상급종합병원은 경증 환자 제한과 응급전용 병상 확보, 배후 진료과 인력 보상 강화가 요구된다.
상급병원이 중증 응급환자나 다른 병원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고난이도 환자 대신, 해당 병원의 외래를 추적 중인 환자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게 되는 현상은 의료전달체계 전반의 개혁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배후진료체계의 강화는 현재 응급실 수용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전공의의 장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작동했으나, 전공의에 의존하던 구조가 무너지며, 당직 근무를 병행하던 전문의들도 탈진하여 응급진료를 기피하고 있다.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이전과 같은 체계를 회복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전문의 중심의 당직 체계 보완과 지속 가능한 구조 마련이 시급하다.
일부 병원에서 PA 간호사로 이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이는 매우 위험하며, 수련병원의 전문의 채용 확대와 권역별 순환당직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일부 응급질환군에 대해 운영되는 순환당직도 병원 수가 적고 범위가 제한적이기에, 적극적인 참여 유도와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전원체계 보완 역시 절실하다. 과거에는 의료진이 직접 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전원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이는 업무 과중과 치료 지연을 야기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응급수술, 시술 또는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 대한 전원조정기능을 제공하였고, 의정사태 이후로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신설되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원조정센터에서도 병원들에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방식은 동일하고, 전원조정센터를 거쳐도 많은 환자들이 전원에 실패하고 있으며, 최초로 환자를 수용한 응급실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를 떠안고 법적 책임의 리스크를 안게 된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최종치료를 제공할 수 없는 응급환자의 상태가 눈앞에서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응급의료진 입장에서 매우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전원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응급환자를 위한 유휴 병실과 중환자실의 확보, 배후진료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통합응급의료정보시스템도 신뢰성 문제가 크다. 현재 안과·이비인후과 진료 가능 병원이 수십 곳으로 표기되지만, 실제로 야간·주말에 진료 가능한 병원은 전무하다.
병원별로 책임지고 진료 가능 여부와 입원 가능 여부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구급·전원 단계 모두에서 활용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의대 증원 2000명의 불을 지핀 모 교수 출신 국회의원은 ‘응급실 뺑뺑이’ 해소를 명분으로 응급환자 강제 수용법을 발의하려 한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되면 응급실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들이 속출할 정도로 현장 반발이 거세다.
응급실 수용 거부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 때문이지, 의료진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환자를 강제로 수용하면 ‘응급실 뺑뺑이’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환자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응급의료를 자랑하던 대한민국이, 어느새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가 길에서 방치되는 현실로 전락했다.
응급의료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필수 서비스이며, 새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조속히 수습하고 응급의료체계를 회복시킬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