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창간70주년 특집] 응급의학의 현황과 발전 방향 ④(후생신보, 2025/06/17)

  • 202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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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 외상, 중독, 급성 질환 등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분야 응급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응급실은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곳인데 야간이건 주말이건 환자는 계속해서 오고, 병상은 부족하고, 이에 환자 보호자들은 화가 난다. 환자의 쏠림 현상, 인력 부족, 야간·주말 근무의 과중함은 응급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다. 

열악한 근무환경, 부당한 대우, 만성적인 인력 부족, 지원자 급감,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이탈해 남은 전문의들도 사직하는 등 응급의료가 위기를 맡고 있다.

특히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응급실 의사들.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면 진료를 거부한 나쁜 의사로 취급당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지방은 물론, 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실 전문의 조차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직하는 등 ‘탈 응급실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 응급의료의 위기를 점점 그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이처럼 붕괴 직전이 응급의료를 구하기 위해 처우개선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붕괴직전의 응급의료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응급실 과밀화 문제 △취약지와 최종치료 인프라 개선 △응급의료진의 법적 위험성 감소라는 3가지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응급실 의사들이 왜 어렵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롭게 탄생한 이재명 정부도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의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응급의학계에서는 응급진료전문의 진찰료 수가 인상과 야간·공휴 가산 동일 적용, 인상분의 50% 이상 진료 전문의 직접 지원, 응급의료기관 평가 지원금 응급의료 장비 구매 허용과 같은 응급의료인력과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실질적 지원, 진료 협력 네트워크 구성, 응급의료 인프라 확대와 같은 지역 완결형 응급의료체계 강화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본지는 창간 70주년을 맞이해 대한응급의학의사회와 공동으로 ‘응급의학의 현황과 발전 방향’을 주제로 응급의료 개선, 의료전달체계, 이송체계, 법적 위험성, 과밀화 문제, 응급의료의 미래를 조망해 고사 직전에 있는 우리나라 응급의료를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1.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멀고도 험한 길 -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2.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 응급의료 측면에서 - 김재혁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정책이사

3. 응급환자 이송체계, 전원체계의 개선방향 - 박경석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학술이사

4. 응급의료 법적 위험성 - 김찬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변인

5. 응급실 과밀, ‘전국 일률 처방’ 넘어선 지역별 맞춤 해법 절실 - 최일국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기획이사

6. 응급의료의 미래: 어디까지 응급으로 볼 것인가? - 전 호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총무 

 

 

4. 응급의료 법적 위험성 - 김찬규 대변인

 

▲ 김찬규 대변인(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응급실 의사들 사이에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돈다. 법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상황을 일컫는데,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에서 의료 공급자인 의사들이 느끼는 부담감의 크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의료소비자인 환자들이 듣기엔 다소 어색할 수 있다. 의사의 진료가 불법과 합법의 사이에 있다니 당연히 법의 테두리안에서 모든게 이루어져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여기에 조금 더 첨언을 하겠다. 

 

과연 국민들이 기대하는 적절한 응급의료는 합'법'의료인가? 2017년도, 교제하던 이성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A 씨는 후두부 열상, 복합분쇄함몰골절, 경막외 출혈 등의 소견으로 응급수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수술 준비과정에서, 중심정맥관 삽입 중 발생한 오른 빗장동맥 관통상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당시 전공의 1년차였던 B씨는 수액과 승압제 등을 투여하고, 흉부외과 전문의를 호출하여 응급처치를 시행하였으나 결국 환자는 사망하였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의료상 과실로 피해자를 사망케 하였으므로 불법행위자로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하며 전공의B씨와 환자에게 상해를 입혔던 가해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공동불법행위’가 성립된다며 4억 4,000만원 규모의 공동배상을 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위 사건에서 전공의 B씨는 시술과정 중 생긴 ‘예상하기 어려운 악결과’로 인해 불법행위자가 되었다. 응급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과 응급수술 준비과정은 적절하였고, 의료사고 발생후 환자 소생을 위한 노력도 적절하였다. 하지만 사법부는 그날의 의료행위를 ‘불법’이라고 명시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2021년도, 뇌동정맥기형(AVN)환자에게 오닉스를 이용한 색전술을 시행하던중 발생한 출혈과 감염으로 환자가 사망했던 사건에서 법원은 병원측 과실을 인정하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의료진이 수술과정 중 부적절하게 오닉스를 주입한 술기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역류한 오닉스를 제거하기 위해 혈전제거술을 시행하는 중 주변 혈관을 건드리지 않았어야 했다. 이를 게을리 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며 병원측에게 2억 7,898만원을 배상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두번째 사건에서 의료진의 의사결정과 시술과정은 적절했다. 다만 ‘예상하기 어려운 악결과’로 인해서 일련의 과정들은 '불법'행위로 간주되어 망인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게 되었다. 시술은 필요했으나 시술을 잘 하지 못했으므로 배상을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경우 같은 행위는 합법이었을까? 의료행위에 대한 법의 잣대는 과연 정의로운가. 이야기를 조금 돌아가보자. ‘정치의 사법화’ 라는 말이 있다. 

 

정치적 결정, 즉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사회적 쟁점들이 정치적 논의과정이나 행정적 결정을 통해 결론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인 법원과 헌법재판소 등의 판단에 의해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유력 후보의 자격논란이 정치적 논의과정으로 합의되지 못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종결지어지는 현상이다.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는 두가지 쟁점을 시사한다. 

 

첫 번째는 정치적 약자인 사회 소수집단이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법적인 결정을 요청함으로써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되지만 그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쓴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선출직인 정치인들이 하는 정책적 결정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의를 전제로 하는것임에도 소수의 임명직인 법률가들의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것이 옳은가 에 대한 문제이다. 

다시 응급의료이야기로 돌아오면,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의사와 제공받는 환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응급의료환경은 가까이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한 의사결정과정이고, 멀리서 보면 의료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일종의 정치적 과정이다. 

즉,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의료는 공급자, 소비자, 정책결정자가 참여하는 하나의 의사결정과정인 셈이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봤을때 의사가 행하는 응급의료의 적절성은 과학 혹은 의료자원 분배의 문제로 보야아 한다.

 

하지만 이를 ‘법’이라는 잣대를 이용하여 악결과로부터 귀납적으로 판단하고 갈등상황을 분쟁상황으로 귀결시키는 사회현상은 정치의 사법화와 유사하며,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또한 피해구제 라는 명목으로 시행하는 ‘민사소송’을 넘어 공급자의 책임을 묻고 형벌을 주는 ‘형사소송’을 남발하는 ‘응급의료의 형법화’는 그저 적절하지 못한 사회비용일 뿐이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다’라는 표현을 이해해 볼 수 있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합법’이라는 범주로 구분짓기 어렵다. 

 

현대의학의 기본전제인 ‘근거중심의학’은 진료과정중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담보하지 결과의 완벽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의학은 의료자원의 배분이라는 정치적 과정이며, 과잉과 과소 사이의 ‘적정의료’을 요구하기에 응급의료 제공의 적절했는지의 기준은 매번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즉, 응급의료 환경을 ‘법’으로써 재단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이야기다. 법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의학은 왜곡될 가능성이 다분하고, 합법적 의료행위라는 표현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똑같은 의료행위일지라도 결과에 따라 불법이되기도 합법이되기도 하며, 법은 의학적판단이 있었던 상황과 조건들을 필요이상으로 무시하는 경향성이 짙다. 

 

이로써 응급의료는 어떠한 ‘절차’에 대한 과학적 의사결정과정이지만, ‘법’은 사망 등 악결과로부터 시작되는 귀책사유의 추정과정임을 밝혔다. 둘 사이의 억지스러운 연결고리를 끊을 방법은 무엇일까? 의료계가 주장하는것은 ‘사망을 포함한 의료사고의 면책’이다. 

 

의료행위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그 행위는 선한 의도임을 존중받아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의료진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감과 위험성을 일정부분 공감하면서도 ‘의료사고 특례’에 관해서는 시큰둥하다. 

 

‘의료의 형법화’로 인해 응급의료가 퇴보하는 것의 책임은, 설득해내지 못한 의료계에 있는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의료소비자에게 있는가. 나는 ‘의료사고특례’를 둘러싼 논의에서, 의사들이 ‘의료계의 사익’과 ‘대중의 공익’의 어떤 중간지점을 짚어내는데 실패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다. 자원의 분배라는 시점에서 의료는 사회과학의 일부다. 

 

어느 사회과학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행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행동하게 하는것”. 의미가 잘 드러나도록 말하자면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같은 목표를 향해 비슷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사고의 법적 위험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을 얻은 상태에서, 그 방법에 대한 동의를 얻는데에 시민사회의 사고가 반드시 의료계의 사고와 일치할 필요는 없지만, 같은 목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응급의료의 법적 위험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진짜 진짜 너무 억울하고 너무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재생산하는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의료공급자 말고 의료소비자 입장에서도 똑같이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응급의료를 이용하는 의료소비자는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충분히 설명 받지 못하고 의사결정능력도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악결과는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피해’를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이에대한 보상심리가 생길 수 밖에 없고, 단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대상이 의료공급자 뿐인 것이다. 

‘의료사고특례’는 공급자들을 보호해주지만 소비자들의 피해를 구제하는데는 방해가 된다. 함께 알아야 할 것은, 의료소비자가 의사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벌어진 상황에 대한 원인을 추궁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관습적 사고이다. 

 

코로나 백신 접종 부작용에 따른 피해소송이 같은 백신을 접종했던 일본 등 주변국가에 비해 10배 이상 높다는것을 통해서도 알수 있듯이 예상치 못한 악결과에 대한 책임추궁은 의사와 정부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소비자들에게 응급상황에서 생긴 악결과는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참고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의료사고의 피해자는 예상치 못한 악결과에 대한 피해 구제를 바랄뿐 의료인에 대한 악감정으로 인해 의료소송을 남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 의료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적절한 피해구제를 할 수있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소송의 대상을 ‘건강권’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마땅히 지켜야 할 국가에게 묻게 해야한다.  

이것들을 포함하여 의료소송의 부담감을 역설하는 것이 응급의료의 법적 위험성을 개선하기위한 ‘충분조건’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EMTALA를 한국에 도입하여 응급진료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충분히 준수했음에도 발생한 악결과에 대해서는 의료보험 공단이나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방법으로, 의료의 공공성을 정부가 공급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의료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공급자의 명백한 과실이 없는 한 공공이 책임지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미국의 Federal Tort Claims Act(FTCA)나 북유럽 국가에서 시행된 Patient injury Act등 연방정부나 정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만 소송을 제기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만약 의료인의 귀책사유가 명확하다면 국가 기관이 의료인을 징계하거나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 이렇게 응급의료의 법적 위험성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했지만, 먼저 응급의료를 법으로 재단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야한다. 

 

응급의료가 사법적 판단으로부터 독립되기 위해서는 법적 판단으로 귀결되는 이유, 소비자들의 보상심리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제시되어야만 역설적으로 응급의료의 법적 위험성을 줄이고 의료공급자가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응급의료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