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국 소아신경과 교수 98명뿐… 제주엔 ‘0명’

《소아신경과 교수, 전국 98명뿐
소아청소년의 열성 경련, 뇌전증, 급성 뇌염 등을 치료하는 전국 대학병원의 소아신경 교수가 총 98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신경계 질환은 응급 상황이 많고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소아신경 교수의 약 63%는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방의 진료 공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정 갈등을 거치면서 소아청소년과 지원자마저 급감해 향후 세부 전문의 배출 전망도 밝지 않다. 의료계는 한정된 인력을 거점 병원에 집중시키고 수가를 현실화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주 7일 24시간 ‘온콜(전화 대기)’ 상태죠. 열성 경련이나 뇌성마비 응급 환자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소아신경 세부전문의인 김선준 전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65)는 퇴근 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다. 전북 지역에 소아신경 진료를 보는 교수가 그를 포함해 2명뿐이기 때문이다. 이달 말 정년을 맞는 김 교수는 “병원을 떠난다는 얘길 듣고 보호자들이 많이 불안해한다”며 “환자들을 두고 쉴 순 없으니 전주 종합병원에서 당분간 진료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김 교수처럼 대학병원에서 소아청소년 뇌신경질환을 담당하는 소아신경 교수가 전국에 100명도 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신경 세부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시험 합격 후 2, 3년의 전임의(펠로) 과정을 거쳐야 취득할 수 있다. 동네 소아과에도 일부 소아신경 세부전문의가 있지만 장비나 인력이 없어 중증 소아신경 질환은 주로 대학병원에서 진료한다.
● 전국에 남은 소아신경 교수 98명뿐
16일 대한소아신경학회에 따르면 이달 14일 기준 전국 대학병원 68곳의 소아신경 전문의는 총 98명으로 집계됐다. 병원 한 곳당 평균 1, 2명만 남아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셈이다. 소아신경은 열성 경련, 뇌성마비부터 모야모야병, 듀센형 근이영양증 등 희귀질환까지 소아 뇌신경 질환을 진료하는 세부 분과다. 뇌전증, 뇌수막염 등 소아신경 질환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별로는 소아신경 교수 중 59.2%(58명)가 서울(37명)과 경기(21명)에 몰려 있었다. 반면 제주는 소아신경 교수가 한 명도 없다. 2024년 4월까지 제주대병원 소아신경과 교수로 근무했던 김승효 건강해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은 “제주대병원에서 13년 동안 혼자 소아신경 중증환자와 응급실 환자를 책임져야 했다”며 “소송 부담도 크고, 언제 과로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붕괴 직전의 소아신경 진료실을 지키는 한 축은 시니어 교수들이다. 현재 소아신경 교수 98명 중 10명은 정년이 지나서도 병원에 남은 노교수들이다. 경북대병원 어린이병원장을 지낸 권순학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65)도 일주일에 30∼4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권 교수는 “전임의도, 레지던트도 없으니 나마저 관두면 젊은 교수 혼자 진료를 봐야 해 병원에 남았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 환자들은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서울로 ‘원정 진료’를 가는 경우가 흔하다. 강훈철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신경학회장)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가까운 응급실에 가면 ‘전문의가 없으니 서울로 가라’는 경우도 흔하다”며 “여기서도 지방 환자들을 다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 “전임의 지원 2, 3명뿐… 명맥 끊길 우려”
최근 급락한 소청과 레지던트 지원율 등을 고려하면 향후 소아신경 세부전문의 배출 전망도 어둡다. 소아신경 교수가 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세브란스병원은 그동안 매년 들어왔던 전임의 지원자가 올해는 한 명도 없었다. 강 교수는 “전국에서 매년 10명 정도 소아신경 세부전문의가 배출됐는데 최근 몇 년 새 2, 3명으로 줄었다”며 “의정 갈등 후 소청과 전공의가 급감하면서 당분간 소아신경 세부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1∼6월) 소청과 레지던트 신규 합격자는 34명에 불과하다.
의료계는 소아신경 전문의 확보를 위해 의료 분쟁에 대한 사법 리스크 완화와 함께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김 원장은 “개원가에서 열성 경련 환자를 20분간 진료해도, 일반 감기 환자와 동일한 1만4000원대 수가를 받는다”며 “진료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라고 했다.
소아신경 환자를 24시간 진료하고 의료진의 소진을 막으려면 소아신경 전문의를 거점 병원 위주로 집중시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전북대병원에 소아신경 의사가 2, 3명만 있어도 24시간 진료를 유지할 수 있다”며 “거점 병원만이라도 소아신경 진료가 멈추지 않도록 정부가 인력 확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